전체 글(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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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nsan
2010 ➤ 오르면 내려가고 내려가면 오르는 굴곡진 산길, 턱밑까지 차오르는 숨. 느닷없이 예보에도 없던 비구름이나 눈구름을 불러들여 산객의 산행을 저지하기도 하고, 산머리를 눈앞에 둔 산객에게 돌부리나 빙판을 내어주고는 방심을 노리기도 한다. 다 왔다 싶어도 정상은 아직 까마득한 산. 한걸음에 들숨, 한걸음에 날숨. 걸음마다 호흡에 정성을 기울이지 아니하면 저 산(山)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아니하고 산머리의 일념을 품은 산객을 냉엄하게 내친다. 산이 인생에 비유되고, 인생이 산에 비유되는 이유이다. 청춘(靑春). 인생의 답을 갈망했던 가장 뜨거웠던 그 시절, 그 답을 산에서 찾고자 친구들이 바다로 향할 때, 나는 천시(天時) 무시로 산으로 향했다. 하지만 설악 대청봉에서도 지리 천왕봉에서도, 산은 인..
2023.06.09 -
Gloomplay
2010 ➤ 땅 위에 어둠이 드리워지면 내면에서 잠자던 기생충들이 스멀스멀 기어 나와 지구를 갉아먹으며 축제를 벌인다. 지구는 지금 충병을 앓고 있다. 이 작업을 하면서부터 꿈속에 쓰레기들이 자주 등장한다. 내 몸이 쓰레기의 자석이 된 것 마냥 각종 쓰레기들이 나에게 날아들고, 음식마냥 쓰레기를 먹어야하는 고문을 당하기도 한다. 잠에서 깨어나면 마치 쓰레기 더미에서 자고 일어난 것처럼 몸이 찌뿌듯하다. 세상에 아름다운 풍경사진들은 풍성하나 인간이 그 아름다운 풍경을 망가트리는 사진들은 드물다. 하물며, 환경을 망가트리는 현장도 환호가 절로 나오게 사진으로 찍어내어 그 이면의 진실한 풍경은 실감하지 못한다. 이제 화려한 가림막을 거둬내고 암울한 풍경을 직시해야 할 때가 되었다. 언제부터인가 인간은 자연을 ..
2023.06.09 -
The Mother
2009 ➤ 이 작업은 험난한 세상 속에서 한뉘, 여린 꽃으로 살다 가신 그리운 내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여정이다. 포효하는 호랑이 앞에서 자식이 위협당할 때면, 당신께서는 조금의 주저함도 없이 사나운 양이 된다. 자식을 윤택한 삶의 세월 속으로 떠밀고, 당신은 분망히 흐르는 고된 세월 속에 몸을 던진다. 당신은 차가운 어둠 속에서도 성스러운 빛을 피워낸다. 자식을 위한 생업은 당신의 꽃 같은 젊음을 야금야금 갉아먹었다. 당신이 황혼으로 접어든 어느 날 당신은 더는 광야 위를 달릴 수가 없었다. 일상의 붓으로 세상에 감동을 그려내는 존재.. 긴 세월 동식하면서 자식은 윤기 있게 살찌워졌고 당신은 주름지고 야위어졌다. 애옥살이하다 병상에 몸을 뉘인 시간이 어쩌면 당신의 유일한 휴식시간인지도 모른다. 자식을..
2023.06.09